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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프랑스여행

[파리 마레지구] 쇼아 추모관 위치와 가는 방법 - 유대인 희생자 이름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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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마레지구에는 유대인과 관련된 추모관, 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그 중 세계 2차 대전에서 학살 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쇼아 추모관'이 있습니다. 쇼아 추모관에는 대략 76,000명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이름의 벽이 있습니다. 


프랑스어 명칭: Memorial de la Shoah


쇼아 추모관 위치와 가는 방법



쇼아 추모관 공식 홈페이지

http://www.memorialdelashoah.org/



쇼아 추모관 여는 시간

월요일/화요일/수요일/금요일/일요일 10:00 - 18:00

목요일 10:00 - 22:00

토요일 휴관



쇼아 추모관 입장료

무료 입장, 일부 전시회 또는 행사는 유료

쇼오 추모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행사별 입장료 확안하기

https://billetterie.memorialdelashoah.org/fr/evenements-et-ateliers?page=1



쇼아 추모관 가는 방법

매트로 7번 (M7)의 Pont Marie 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이동 (도보 4분)



매트로 1번 (M1)의 Saint-Paul 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이동 (도보 2분)



쇼아 추모관 주소 및 위치 (구글지도)

17 Rue Geoffroy l'Asnier, 75004 Paris



쇼아 추모관 둘러보기

프랑스 파리에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로지에르 거리 주변에 유대인들이 정착을 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중 마레 지구는 나치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히 마레지구에는 유대인 관련 추모관과 박물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생폴 생루이 성당에서 프랑수아 미공 거리(Rue François Miron)의 동쪽으로 걷다 보면 '쇼아 추모관'의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표지판을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면 쇼아 추모관을 만날 수 있어요.




쇼아 추모관 건물 외곽 벽의 모습입니다. 왼쪽은 출입구가 있는 곳이고, 오른쪽은 당시 유대인을 숨겨주거나 보호해주었던 프랑스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입니다. 이 벽은 '유대인 이름의 벽'을 보고 나중에 보기로 하고 왼쪽 출입구쪽으로 갔습니다. 입구는 보안대를 거쳐 입장할 수 있고, 문은 직접 열 수 없기 때문에 벨을 눌러 문을 열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입구의 보안대를 지나 들어가면 거대한 조각물이 마당 중앙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파랑색 천으로 장식이 되어 있어 매우 오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어요. 여기서 왼쪽에 '유대인 이름의 벽'이 있습니다.




'이름의 벽'에 대한 설명이 프랑스어와 영어로 적혀 있습니다. 


벽에 새겨진 이름은 11,000명의 어린이를 포함하여 약 76,000명의 유대인 이름으로 유대교를 몰살하기 위한 나치의 계획의 일부로 Vichy 정부와 협업하여 프랑스로부터 보내진 유대인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아우쉬뷔츠-비르케나우와 루블린-마이다네크 캠프에서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살해되었습니다. 이들 중 오직 약 2,500명만이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지구에서 없애려고 했지만 이 벽은 희생된 유대인들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돌에 대리석에 이름을 새긴 것입니다. 


세계 2차 전쟁 동안 유럽에 사는 6백만 유대인은 나치에 의해 암살 당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름이 새겨진 벽 사이로 내 몸을 옮길 때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었습니다. 유골이 없어 무덤을 만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여기가 묘와 같은 곳인가 봅니다. 이들의 후손들이 한참을 이름을 찾더니 그 아래 초와 조그만 돌을 놓고 목례를 한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유대교에서는 무덤 위에 조그만 돌을 올려 놓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쇼아 추모관 밖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유대인들을 도와준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둔 벽입니다. 




높은 건물의 벽은 유대교를 상징하는 표식인 '다윗의 별'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노랑색 다윗의 별을 달고 다니게 해서 다른 사람들과 격리 시키려 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슴 깊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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